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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까지 반신반의했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실사 리메이크가 그 감동을 살려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거든요. 그런데 막상 극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생각이 꽤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 17억 달러 흥행 수익을 기록한 원작을 실사로 옮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작진이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했는지가 화면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제작 비하인드: 숫자로 읽는 모아나의 규모
제가 이 영화 제작 과정을 알아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숫자들이었습니다. 78만 4,000여 평 규모의 세트장, 2,500그루 이상의 코코넛 야자수, 총 2,000여 벌에 달하는 의상. 이 수치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실제 영상을 보니 그 스케일이 납득이 됐습니다.
모투누이 섬 마을 세트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외곽 농장에 세워졌는데, 오두막과 카누를 연결할 때 망치나 못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신 통가 출신 매듭 장인이 코코넛 섬유로 만든 끈으로 하나하나 손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한 세트 제작이 아니라 폴리네시아 전통 건축 방식인 라싱(lashing) 기법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라싱이란 새끼줄이나 끈으로 두 재료를 단단히 묶어 고정하는 전통 조선·건축 기술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의상 쪽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태평양 지역 혈통의 의상 감독 리즈 매그리거는 타파(tapa)라는 소재를 기본으로 의상 전체를 설계했는데, 타파란 뽕나무 껍질을 두드려 만든 전통 직물로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 의례와 일상 모두에 쓰이는 소재입니다. 문제는 이 소재가 너무 약해서 의상 제작에 바로 쓸 수 없었다는 것인데, 결국 제작진이 타파 원단을 새로 개발했다고 합니다. 드웨인 존슨이 입는 티 잎사귀 치마는 하루에 세 벌밖에 만들 수 없을 만큼 공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음악 면에서도 구체적인 수치가 따라옵니다. 작곡과 가창을 맡은 린 마누엘 미란다는 퓰리처상·그래미상·에미상·토니상을 모두 수상한 인물로, 오스카상만 받으면 EGOT(Emmy, Grammy, Oscar, Tony)을 달성하게 됩니다. EGOT이란 미국 엔터테인먼트 4대 시상식을 모두 석권한 예술가에게 붙는 호칭으로, 역사상 단 두 명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리처드 로저스와 코러스 라인의 마빈 햄리시만이 이 영예를 안았습니다.
미란다가 신규 오리지널 곡 'Along the Way'로 그 세 번째 자리를 노리는 셈입니다(출처: IMDb).
제가 직접 극장에서 확인해보니 바다와 파도 장면은 실제로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촬영한 분량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스크린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 애니메이션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단순히 더 크거나 화려한 게 아니라, 바람과 물의 질감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세트 규모: 애틀랜타 외곽 농장에 약 78만 4,000평 초대형 세트장 조성
- 코코넛 야자수 2,500그루 이상 직접 식재, 전통 라싱 기법으로 오두막 시공
- 의상 총 2,000여벌 타파 원단 신규 개발 후 전량 수작업 제작
- 주요 해변 촬영지: 모아나의 실제 모티브인 하와이 오아후섬
- 신규 오리지널 곡 'Along the Way' 원작 성우 아우이 크라발호와 캐서린 라가이아 공동 가창
캐스팅과 관람 후기: 찰떡인 사람,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32,000대 1, 모아나 역 오디션 경쟁률입니다. 제가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과장처럼 느껴졌는데, 캐서린 라가이아가 실제 스크린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나서야 왜 제작진이 그렇게 많은 지원자 중에서도 "느낌이 딱 왔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캐서린 라가이아는 촬영 당시 17세로 이 영화가 데뷔작입니다. 할아버지·할머니 모두 태평양 사모아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원작 모아나를 보며 자랐다고 하죠. 아버지 제이 라가이아는 스타워즈 시리즈 클론의 습격과 시스의 복수에서 타일 선장을 연기한 배우이고, 언니·오빠 넷도 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연기적 환경으로는 그야말로 최적의 배경인데, 제가 직접 봤을 때 그 배경이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화면 장악력으로 이어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표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드웨인 존슨의 경우는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약 18kg에 달하는 보철물과 가발, 전신 의상을 착용하고 체중 증량까지 감행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예고편에서 풍성한 가발을 쓴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 영화에서 마우이 특유의 허풍과 유머가 드웨인 존슨의 체격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더라고요. 특히 'You're Welcome' 장면은 제 경험상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보다 더 크게 웃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출신 배우로, 이번 마우이 역에서 영감을 얻은 대상이 자신의 외할아버지 피터 마이비아 대추장이라고 밝혔습니다. 피터 마이비아는 사모아계 프로레슬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로, 드웨인 존슨이 프로레슬러 '더 락'이 된 배경에 이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우이라는 캐릭터가 그에게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원작 애니메이션이 가진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을 완전히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부 장면에서는 원작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폴리네시아 신화의 과장되고 환상적인 요소들이 실사로 옮겨지면서 오히려 무게감이 줄어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원작을 존중하면서 실사만의 밀도를 충분히 쌓아 올린 작품이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다시 찾아보게 됐는데, 둘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모아나 실사 영화는 단순히 원작을 베낀 작품이 아닙니다. 78만 평 세트와 2,000벌 수작업 의상, 언어학자·천문학자·매듭 장인까지 동원한 고증 작업, 그리고 폴리네시아 혈통 배우 200여 명의 참여는 진정성 있는 제작 태도를 숫자로 증명합니다.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좋은 인상이었습니다.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기대하고 가시면 일부 실망하는 장면이 있을 수 있지만, 실사만의 압도적인 바다와 살아 있는 폴리네시아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올여름 극장에서 볼 만한 선택입니다. 보고 나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한 번 더 챙겨보시면 두 작품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