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들과 아무 이유 없이 매일 붙어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이름들이 기억에서 멀어졌다는 걸 느낀 적 있으십니까. 저도 영화 를 다시 떠올리다가 그 감각이 확 올라왔습니다. 2001년 개봉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던 이 작품은,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라 환경과 선택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드라마입니다. 우정이라는 출발점 - 1976년 부산, 네 소년의 시작영화는 1976년 부산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 네 소년은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이, 평범한 가정의 아이, 공부 좀 하는 아이가 한데 섞여 매일 어울립니다. 저는 이 도입부를 볼 때마다 제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이 겹쳐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모이고, 이유..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끼를 다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닫힌 마을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손 안에서 굴러가게 됐는지, 그 과정이 소름 돋을 만큼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였습니다. 단순한 스릴러를 기대하고 봤다가 인간의 욕망과 신앙, 집단심리가 뒤엉킨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폐쇄된 공동체,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이장 천용덕이 그냥 탐욕스러운 악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는 단순히 돈을 빼앗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적 의존을 설계한 인물이었습니다.영화에서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이 바로 폐쇄적 공동체(Closed Community) 안에서의 권위 구조입니다. 여기서 폐쇄적 ..
저는 최전방에서 7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래서 강철비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긴장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과장과 허구로 채워져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군사적 긴장 구도나 작전의 흐름, 강대국들의 개입 방식이 "상상하기 어렵지만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느낌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군사현실성 - 영화적 허구와 실제 사이일반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북한 묘사는 두 방향으로 나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예 희화화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위협적인 존재로 그리거나. 그런데 제 경험상 강철비는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꽤 정확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영화 속 엄철우는 은퇴한 북한 특수부 요원입니다. 여기서 특수부란 정찰총..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은 진지하게 연기하는 건데 왜 웃기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십니까. 배우 김인권이 바로 그 케이스입니다. 엄청난 보고서 더미를 끝내고 시계를 봤더니 오후 7시 반, 약속 잡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냥 자기엔 이른 그 시간에 끓인 라면 한 냄비 옆에 두고 틀었던 영화가 열혈형사였는데, 끄려고 손을 뻗었다가 어느새 끝까지 보고 있었습니다. 김인권이라는 배우, 왜 웃긴지 분석해봤습니다코미디 영화에는 크게 두 가지 연기 방식이 있습니다. 본인이 웃기려고 의도하는 연기, 그리고 진지하게 임하는데 상황 자체가 웃긴 연기입니다. 배우론(俳優論)의 관점에서 후자를 '비자발적 코미디(involuntary comedy)'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배우 본인은 100% 정극 모드인데 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