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총성이 멈춘 뒤에도 화면 속 인물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1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은 6·25전쟁의 후반부, 그것도 가장 지루하고 참혹했던 교착 상태의 고지 쟁탈전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봐서 느낀 건,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보다 전쟁의 '목적이 흐려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전쟁 영화와 결이 달랐습니다. 끝나지 않는 고지 쟁탈전, 전쟁의 목적이 흐려지다6·25전쟁 후반기, 전선은 더 이상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교착전선(膠着戰線)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여기서 교착전선이란 쌍방이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소모전을 반복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영화 속 가상의 장소..
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전투 씬보다 형제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에서 먼저 무너졌는데,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천만 관객을 만든 촬영 현장의 진짜 이야기흔히 이 영화가 천만을 넘긴 이유를 두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덕분"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하인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의 힘은 규모가 아니라 디테일에 대한 집착에서 나왔습니다.대표적인 사례가 증기 기관차 제작 건입니다. 강제 징병 장면에 반드시 열차가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판단 하나 때문에, 해외 촬영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제작팀은 불도저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