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개봉한 영화 은 살인청부(contract killing) 조직을 평범한 중소기업으로 위장한다는 설정 하나로 개봉 당시 꽤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고, 최근 드라마 을 OTT로 보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검색하게 됐습니다. 소지섭이 보여주는 그 절제된 표정과 말투가 너무 비슷해서, 처음엔 같은 세계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살인청부 조직을 회사로 만든 설정의 설득력영화 의 핵심은 살인청부(assassination brokerage) 조직을 실제 금속 제조 회사로 위장했다는 세계관 설계입니다. 여기서 살인청부란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특정 대상을 제거하는 행위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그 구조를 그대로 일반 직장에..
역사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괜히 사전 조사를 해두는 편입니다. "이 장면은 실제랑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어서요. 그런데 황산벌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맞서는 백제군과 경상도 사투리로 받아치는 신라군, 그 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거든요. 웃고 나서 뒤늦게 "잠깐, 이게 역사적으로 맞는 건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역사적 고증, 어디까지가 사실일까황산벌 전투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실제 전투입니다. 여기서 나당연합(羅唐聯合)이란 신라와 당나라가 맺은 군사 동맹을 뜻하는데, 신라는 대동강 이북 영토를 당나라에 양보하는 조건으로 이 동맹을 성사시켰습니다. 백제 입장에서는 사실상 포위된 ..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인 사건. 역사 교과서에서 딱 두 줄로 배웠던 임오화변을 영화 로 처음 제대로 마주했을 때, 저는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단순한 왕실 비극인 줄 알았는데, 화면을 보는 내내 묘하게 제 주변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거든요. 영조와 사도의 갈등이 역사 속 사건이 아니라, 지금 어딘가 거실에서 벌어지고 있을 법한 부자 사이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부자갈등 - 권력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부모가 자녀에게 "나 때는 말이야"를 꺼내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해지는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영화 속 영조가 겹쳐 보였습니다. 영조는 52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재위 기간을 기록한 군주입니다. 스스로 정통성의 약점을 극복하며 쌓아 올..
한명회를 떠올리면 어떤 얼굴이 먼저 그려지십니까? 저는 오랫동안 간신의 전형, 그 이미지 하나만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를 보고 나서 그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100kg의 거구에서 나오는 위압감, 저음의 목소리, 역사 기록에 더 가까운 한명회의 재해석.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풀어냈는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계유정난, 우리가 놓친 역사의 맥락1452년, 12세의 이홍이가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듬해, 조선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권력 이동 중 하나가 벌어집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입니다. 여기서 계유정난이란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비롯한 고명대신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쿠데타를 의미합니다. ..
군도: 민란의 시대는 개봉 당시 관객 470만 명을 동원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사극 액션이 아니라, 각 배우가 캐릭터를 그야말로 몸으로 살아낸 작품이었거든요. 하정우의 더티한 매력, 강동원의 압도적인 비주얼, 마동석의 묵직한 존재감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이 영화로 처음 실감했습니다. 하정우와 마동석,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들혹시 사극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음식을 먹는 장면에 그렇게까지 집중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군도에서 처음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돌무치는 밥을 먹을 때도, 계란을 꺼낼 때도, 상추를 킁킁거리며 냄새 맡을 때도 철저하게 돌무치였습니다. 단순한 먹방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삶 자체가 담긴 연기라..
정말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파묘는 극장에서 한번, 집에서 ott 두번을 봤습니다. 처음엔 분위기에 눌려서, 두 번째엔 뭔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아서, 세 번째엔 그 '놓친 것들'을 확인하러 갔죠. 볼 때마다 화면 구석에서 새로운 디테일이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장재현 감독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작품, 파묘의 연출 디테일과 촬영 비화를 파헤쳐 봤습니다. 연출 디테일 - 화면 한 켠에 숨겨진 장치들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있습니다. 유해진이 파묘 현장에서 "이 참 금속 같은 건 넣지 말래니까"라고 툭 내뱉는 장면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냥 현장 잡담처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완전한 즉흥 애드리브였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이 이걸 쇠말..
영화 군함도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스크린 앞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읽었던 강제징용이 스크린 위에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이런 역사 소재 영화는 '교훈적이지만 좀 무겁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군함도는 거기에 오락적 완성도까지 얹으려다 보니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자료를 찾아보며 느낀 것들—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경계, 친일 협력 세력의 실체, CG와 고증의 완성도—을 있는 그대로 정리해봤습니다. 강제징용, 교과서 밖의 이야기학교에서 '강제징용'을 처음 배울 때, 교과서 속 사진 한 장과 짧은 설명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때 숫자와 지명을 외우는 것으로 그 역사를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영상..
솔직히 저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윤동주를 그냥 '별 헤는 밤'을 쓴 서정 시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를 보고 나서야, 제가 그를 너무 얕게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흑백 화면 속 두 청년이 겪었던 고뇌는 상상 이상이었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흑백 연출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보여줬습니다영화 (2016, 감독 이준익)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촬영된 작품입니다. 처음엔 솔직히 '요즘 시대에 왜 굳이 흑백으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0분도 채 안 돼 그 의문은 사라졌습니다.흑백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란 색을 배제하고 명도와 대비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여기서 시네마토그래피란 단순한 카메라 기술이 아니라..
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전투 씬보다 형제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에서 먼저 무너졌는데,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천만 관객을 만든 촬영 현장의 진짜 이야기흔히 이 영화가 천만을 넘긴 이유를 두고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덕분"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하인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의 힘은 규모가 아니라 디테일에 대한 집착에서 나왔습니다.대표적인 사례가 증기 기관차 제작 건입니다. 강제 징병 장면에 반드시 열차가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판단 하나 때문에, 해외 촬영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제작팀은 불도저 엔진..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B급 코미디'라는 장르를 좀 얕봤습니다. 어차피 허술하고 유치하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웃어버렸습니다. 택견, 검도, 쿵푸를 각자 가르치는 세 명의 '김관장'이 한 동네에서 부딪히고 뭉치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훨씬 볼 게 많았습니다. B급 코미디라서 허술할 거란 편견,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일반적으로 B급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개연성이 떨어지고 연출이 거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평가가 절반만 맞습니다. 확실히 장면과 장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고, 설정 자체가 다소 억지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같은 성씨에 같은 직함을 가진 세 사람이 한 건물에 도장을 차려놓고 관원 쟁탈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