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범죄 영화라길래 쫓고 쫓기는 액션 위주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는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경찰, 검사, 기업인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부패 구조를 날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사건을 이용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류승범과 황정민, 누구 하나 밀리지 않는 연기 대결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한 번 느낀 건 "류승범은 역시 류승범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주양 역을 맡은 류승범 배우는 능청스러움과 광기를 동시에 품은 캐릭터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 냈습니다. 특히 본인의 친형인 류승완 감독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한 애드리브 장면들은, ..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한 영화가 더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끝까지 헷갈리는 영화가 더 오래 남을까요? 저는 2006년 개봉한 한국 범죄영화 을 본 뒤 이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류승범과 황정민,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빼앗기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연기력 - 류승범과 황정민, 두 짐승의 충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류승범은 역시 류승범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황정민이었고요. 두 배우의 연기를 두고 흔히 '캐릭터 소화력'이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 캐릭터 소화력이란 배우가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의 내면과 행동 방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영..
학창 시절 친구들과 아무 이유 없이 매일 붙어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이름들이 기억에서 멀어졌다는 걸 느낀 적 있으십니까. 저도 영화 를 다시 떠올리다가 그 감각이 확 올라왔습니다. 2001년 개봉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던 이 작품은,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라 환경과 선택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드라마입니다. 우정이라는 출발점 - 1976년 부산, 네 소년의 시작영화는 1976년 부산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 네 소년은 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이, 평범한 가정의 아이, 공부 좀 하는 아이가 한데 섞여 매일 어울립니다. 저는 이 도입부를 볼 때마다 제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이 겹쳐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모이고, 이유..
2005년 개봉한 영화 는 복싱이라는 소재를 빌려 두 남자의 인생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작품입니다. 류승범과 최민식, 각자의 방식으로 바닥을 치는 두 인물이 결국 같은 링 위에서 맞붙는 구조를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류승범이 만든 유상환, 그 체감의 차이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류승범이 연기한 유상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실제로 마주쳤을 법한 사람 같았습니다. 말투 하나, 담배 피우는 각도, 아버지 앞에서 살짝 쭈그러드는 눈빛까지. 양아치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체감이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유상환은 19살에 삥을 뜯고 일수꾼을 살해한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인물을 보며 단순한 악인으로 읽..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를 보면서 단순한 속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막상 다 보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멍함이 이 영화가 남긴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정환경이 사람을 어디까지 만드는지, 세대가 바뀌면 의리의 무게도 달라지는지, 그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가정환경이 만든 사람들 - 성운과 준석의 출발점제가 직접 봤는데, 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는 부분이었습니다. 성운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인 계부 밑에서 자랐고, 눈앞에서 약을 하는 어른을 보며 성장했습니다. 준석 역시 조직 안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뒤 17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출발점이 다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끼를 다 보고 나서 딱 그랬습니다. 닫힌 마을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손 안에서 굴러가게 됐는지, 그 과정이 소름 돋을 만큼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였습니다. 단순한 스릴러를 기대하고 봤다가 인간의 욕망과 신앙, 집단심리가 뒤엉킨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폐쇄된 공동체,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이장 천용덕이 그냥 탐욕스러운 악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는 단순히 돈을 빼앗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적 의존을 설계한 인물이었습니다.영화에서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이 바로 폐쇄적 공동체(Closed Community) 안에서의 권위 구조입니다. 여기서 폐쇄적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추격자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잘 만든 한국 범죄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액션도, 극적인 반전도 아닌데 그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어떻게 그 긴장감을 만들어냈는지,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분석하게 됩니다. 사이코패스 심리를 현실로 끌어내린 연출제가 직접 여러 번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의 공포가 자극적인 장면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범인 영민이 무서운 이유는 그가 괴물처럼 생겼거나 초인적인 힘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 섞여 있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범행을 이야기하는 그 태도 자체가 공포였습니다.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사이코패스(..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시끌벅적한 조폭 영화 한 편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0번 넘게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실감했습니다. 1982년 부산을 배경으로, 세관 공무원 익현이 하룻밤 만에 반건달 인생으로 굴러 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웃기다가도 끝에 가면 묘하게 씁쓸해집니다. "드가자!", "살아있네!" 같은 유행어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입니다. 1982년 부산, 이 영화가 그 시대를 택한 이유영화의 배경인 1982년은 단순한 연도 설정이 아닙니다.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공고히 하던 시기로, 정부는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의 조직폭력배를 대대적으로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범죄와의 전쟁'이란 1980년대 군..
잘생긴 배우가 주연을 맡으면 연기가 가려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제가 직접 다시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2006년작 은 사형수와 자살 시도자라는 두 인물이 서로를 통해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장면 하나 없이도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배우 연기 - 절제가 오히려 더 강했다강동원 배우는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저평가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 봤을 때는 그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만큼은 그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윤수 역의 강동원은 이른바 미장센(mise-en-scène) 연기에 철저히 의존합니다. 미장센이란 배우의 몸짓, 표정, 공간 배치 ..
저는 최전방에서 7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했습니다. 그래서 강철비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긴장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과장과 허구로 채워져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군사적 긴장 구도나 작전의 흐름, 강대국들의 개입 방식이 "상상하기 어렵지만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느낌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군사현실성 - 영화적 허구와 실제 사이일반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북한 묘사는 두 방향으로 나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예 희화화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위협적인 존재로 그리거나. 그런데 제 경험상 강철비는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꽤 정확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봅니다.영화 속 엄철우는 은퇴한 북한 특수부 요원입니다. 여기서 특수부란 정찰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