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나오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스크린 속 장학수가 적진을 누비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보다 더 강하게 남은 건 "이게 그냥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흥행 성적(누적 관객 700만 명)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영화입니다. 잘 만든 영화냐를 놓고는 의견이 갈리지만, 보고 나서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배경 - 1950년 9월, 그 작전이 왜 중요한가영화를 보기 전에 인천상륙작전이 어떤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인지를 알고 있어야 훨씬 더 많은 게 보입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전쟁 액션물로 접근했다가, 나중에 역사를 찾아보고 나서야 영화 속 장면들이 다르게 읽혔습니다.195..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총성이 멈춘 뒤에도 화면 속 인물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1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은 6·25전쟁의 후반부, 그것도 가장 지루하고 참혹했던 교착 상태의 고지 쟁탈전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봐서 느낀 건,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보다 전쟁의 '목적이 흐려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전쟁 영화와 결이 달랐습니다. 끝나지 않는 고지 쟁탈전, 전쟁의 목적이 흐려지다6·25전쟁 후반기, 전선은 더 이상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교착전선(膠着戰線)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여기서 교착전선이란 쌍방이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소모전을 반복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영화 속 가상의 장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범죄 영화라길래 쫓고 쫓기는 액션 위주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는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경찰, 검사, 기업인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부패 구조를 날것 그대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범인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사건을 이용하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류승범과 황정민, 누구 하나 밀리지 않는 연기 대결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한 번 느낀 건 "류승범은 역시 류승범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주양 역을 맡은 류승범 배우는 능청스러움과 광기를 동시에 품은 캐릭터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 냈습니다. 특히 본인의 친형인 류승완 감독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한 애드리브 장면들은, ..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한 영화가 더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끝까지 헷갈리는 영화가 더 오래 남을까요? 저는 2006년 개봉한 한국 범죄영화 을 본 뒤 이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류승범과 황정민,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빼앗기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연기력 - 류승범과 황정민, 두 짐승의 충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류승범은 역시 류승범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당연히 황정민이었고요. 두 배우의 연기를 두고 흔히 '캐릭터 소화력'이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 캐릭터 소화력이란 배우가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의 내면과 행동 방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추격자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잘 만든 한국 범죄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액션도, 극적인 반전도 아닌데 그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어떻게 그 긴장감을 만들어냈는지,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분석하게 됩니다. 사이코패스 심리를 현실로 끌어내린 연출제가 직접 여러 번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의 공포가 자극적인 장면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범인 영민이 무서운 이유는 그가 괴물처럼 생겼거나 초인적인 힘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에 섞여 있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범행을 이야기하는 그 태도 자체가 공포였습니다.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사이코패스(..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냥 시끌벅적한 조폭 영화 한 편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0번 넘게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실감했습니다. 1982년 부산을 배경으로, 세관 공무원 익현이 하룻밤 만에 반건달 인생으로 굴러 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웃기다가도 끝에 가면 묘하게 씁쓸해집니다. "드가자!", "살아있네!" 같은 유행어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입니다. 1982년 부산, 이 영화가 그 시대를 택한 이유영화의 배경인 1982년은 단순한 연도 설정이 아닙니다.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공고히 하던 시기로, 정부는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국의 조직폭력배를 대대적으로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범죄와의 전쟁'이란 1980년대 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변요한, 야가미 라이토(데스노트)의 그 배우까지 나온다고 해서 꽤 기대를 품고 앉았는데, 막상 보고 나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안 본 눈을 사고 싶다'였습니다. 첩보 액션 장르 특유의 긴장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긴장감이 끝까지 쌓여 폭발하지 못하고 조용히 새는 느낌이랄까요. 화려한 출연진을 갖춘 한중일 합작 스파이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를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줄거리: 열차 수면 가스부터 심장 폭탄까지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는 한국 최정예 요원 변유한(변요한), 다른 하나는 일본 비밀조직 AN 통신 소속 요원 타카노입니다.AN 통신은 요원들에게 24시간마다 본부에 반드시 연락하도록 강제하는 조직입니다. 여기서 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가벼운 사기 오락물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게 짜인 영화였고, 마스터와 비교하면서 보니까 두 작품이 같은 소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게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도 끝까지 누가 진짜 사기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구성, 그 부분이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 사기 구조로 사기꾼을 잡다 — 영화 꾼의 범죄 설계영화 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범죄 설계 방식이었습니다. 극 중 핵심 인물들은 다단계 금융사기(Pyramid Scheme)를 통해 수천억 원을 가로챈 거물을 잡기 위해, 그 거물이 쓰던 방식 그대로를 역으로 활용합니다. 여기서 다단계 금융사기란, 실제 수익 창출 없이 신규 투자자의 자..
요즘 스마트폰을 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저신용자도 즉시 대출 가능"이라는 문자가 날아옵니다. 처음엔 스팸으로 지우다가, 문득 이게 어떤 구조로 굴러가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 영화 을 보게 됐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범죄 오락물이 아니라 돈 앞에서 선을 하나씩 지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작업대출, 범죄인 줄 알면서도 발을 들이는 이유영화의 핵심 소재인 작업대출(作業貸出)은 금융 용어로 정확히 정의하면 허위 서류를 이용해 대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자격 있는 것처럼 꾸며 은행에서 돈을 받아내는 불법 대출 사기 수법입니다. 여기서 '작업'이란 쉽게 말해 서류와 신분을 조작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뜻합니다. 취업 준비생이 직장인으로 둔갑하고, 신용불량자가 멀쩡한 회사원이 되는 식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우진 배우 이름 하나만 보고 티켓을 끊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폭 보스 자리를 아무도 안 하려는 영화였습니다. 은퇴를 갈망하는 전설적 조직원이 오히려 보스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역발상 설정, 처음엔 '이게 되나?' 싶었는데 보고 나서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조폭 영화의 공식을 뒤집은 설정 - 캐릭터 분석영화 는 전형적인 범죄 액션물의 문법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보통 조폭 영화라고 하면 권력 다툼, 배신, 피 튀기는 액션이 기본값인데, 이 작품은 오히려 그 공식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놓았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 장르가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건가?"였습니다.주인공 문태는 과거 전국을 제패했던 19파의 에이스로, 일당백도 불사했던 ..